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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21 17:45
볼만합니다. 음... 애플과 잡스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더 재밌을 것이고, 모른다 해도 충분히 볼만합니다. 대니 보일을 기대했다면 비추, 에런 소킨을 기대했다면 추천할 작품이 될 것 같네요.
16/01/21 17:57
각본을 맡은 애런 소킨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소킨의 특기는 지성과 서사의 자연스러운 결합입니다. 다큐멘터리나 토론프로그램에서나 논할 고도의 사회적 공론마저도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로 만들어내지요. 미드의 전설인 웨스트 윙이 그랬고, 뉴스룸의 초반 에피소드들이 그랬습니다.
다만 그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때, 혹은 소킨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려다 헛디딜 때 그의 작품들은 진공청소기 속의 먼지뭉치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변해버립니다. 머리카락에 모래에 먼지까지 섞인, 시청자 입장에서 이것이 도대체 뭔지 알 도리가 없는 뭔가로 전락합니다. Studio 60 from the Sunset Strip이나 Sports Night나 뉴스룸의 후반부가 그랬죠. 엄청난 야심이 담긴 각본이라는 것은 짐작이 되는데 내용이 그에 따라가질 못하는 간극이 그대로 전해져오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뉴스룸 후반은 제프 다니엘스나 샘 워터스턴, 제인 폰다를 불러놓고도 그렇게밖에 못하냐는 생각에 분통이 다 터졌습니다.) 소킨이 만든 영화들은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각종 감상평을 보면 이번 작품은 기대해도 좋을 듯 하네요.
16/01/21 18:06
일단 전기 영화치고는 극적인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유의 지성과 서사의 자연스러운 결합도 여전합니다. (전 지성이라기 보다는 먹물적 화려함으로 보는 편입니다) 다만 의문스러운 요소가 있고, 그 부분이 유독 대니 보일스러워서 뭔가 감독과 각본가의 스타일이 조화하지 못하고 상충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킨이 만든 영화 중 최고는 아마도 <소셜 네트워크>가 아닐까 싶습니다.
16/01/21 18:29
말씀하신대로 소킨은 말이나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이고, 그것을 피로할 공간이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정치의 모든 주제를 포괄했던 웨스트 윙은 최적의 무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마다 웬만한 시리즈 하나에서 논하기도 벅찬 공론들을 소개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웨스트 윙 초반부는 각종 대학의 정치학과 수업 부교재로 쓰일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했습니다. 문제는 Studio 60나 뉴스룸처럼 그 밸런스 조절에 실패해버리면 에피소드 3쯤에서 모든 고민을 소진해버리고 나머지는 학부 2학년에나 어울릴 초보적인 에세이로 채워넣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의 소킨은 평균적인 역량조차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래도 모자라면 슬슬 연애노선이나 신파극이 끼어드는데.....바로 여기가 소킨 드라마가 멸망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바라본 소킨은 시청자를 휘두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각본가입니다. 소킨은 미간을 조그맣게 찡그리고 화면을 노려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최적의 이야기꾼입니다. 하지만 소파에 편하게 늘어진 시청자들에게 호소하는 재주는 B급 이하입니다. 그래서 소킨은 시청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재주가 영화들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긴 합니다.
16/01/21 18:37
평가 하나하나에 전부 끄덕이게 만드시네요. 정말 소킨은 미간을 찡그리고 화면을 노려보는 재미가 있는 작가입니다.
다만 소킨의 한계가 드러나는 이유에 관해서 저는 좀 다른 생각이 있는데요. 여론에 좀 휘둘린다고나 할까요. 뉴스룸 시즌 1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움이 시즌2, 3를 거치면서 무뎌졌고, 특히 공화당 비판을 넘어 옹호 수준까지 뉘앙스가 변하는 걸 보면서 과감한 자기 주장을 못하는 작은 심장이 작가로서 약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번 <스티브 잡스>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더라고요.
16/01/21 19:18
소킨의 드라마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을 둘 꼽자면 "비이성적인 사회통념"과 "똑똑하고 설득력있는 악역(?)"입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통념을 극적인 서사와 해학을 섞어 공격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대리만족과 공감을 얻어내고, ex) 뉴스룸에서의 "America is not the greatest country in the world," 웨스트 윙 에피소드 1의 복음주의자들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는 주인공과 악역의 대등한 토론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킵니다. 이 경우는 딱히 승패를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찬반측 모두에게 호소력을 발휘합니다. ex) 웨스트 윙에서의 자유무역 논쟁 웨스트 윙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의 특성상 주인공들에게도 지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 상대역(에인즐리 헤이즈, 이름 기억나지 않는 동성애자 하원의원, 대니 콘캐넌 등등)들을 대거 등장시킬 수 있었고, 주인공측과 그들의 공방전은 드라마의 지평을 계속적으로 넓혀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천조국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비이성적인 통념들은 다른 드라마들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뉴스룸이었습니다. 시즌 초반부에는 두 가지가 모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악역이라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일본전력에 3류 선거참모에 한량같은 재벌 아들에 가십지 기자같은 무리들밖에 없었고, 뜬금없이 도청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떡밥에, 시즌 3에서는 웬 골빈 벼락부자가 최종보스니..........도무지 지적 긴장감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소킨의 특기를 발휘할 환경이 사라져버렸죠. 샘 워터스턴의 죽음(-_-)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 장례식을 뜬금없이 파티로 만들어버릴 때는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그동안 본 시간이 아까워서요. 여론 쪽은 저도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네요.
16/01/21 19:34
오... 캐릭터 구성을 통한 분석 상당히 날카롭고 공감도 많이 됩니다.
사장님 말씀이나 제 의견을 합해보면.... 뉴스룸 시즌3는 총체적 난관이었네요. 저도 진짜 다 보고 '이걸 내가 왜 봤지...' 했었습니다 ㅠ,ㅠ 특히 장례식은 보면서 '그래 한 편 정도는 얘들도 좀 쉬어가야지.' 싶었는데 그게 끝 크크크크크크 진짜 욕나왔음요.
16/01/21 19:48
우월한 크기..... 대단했죠...
항상 생각해보면 영화에서의 애런 소킨은 상당히 미묘한 성공담, 내지 성공적인 실패담에 대해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던 작가였다고 생각하거든요. 뒷맛이 씁쓸한 소셜 네트워크나 '그래서 내가 이 스포츠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까'라고 말하던 머니볼이나. (드라마는 잘 안봐서 할 말이 없...) 어쩌면 대니보일과 데이빗 핀쳐는 감각적 비주얼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대니 보일은 대놓고 냉소적인 타입이 아니었죠. 그게 어쩌면 충달님이 아쉽다고 평가한 불협화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크크
16/01/21 20:17
그러고 보니 <머니볼>이 있었네요. <머니볼>은 스포츠 선수들 이야기라 에런 소킨 특유의 넘쳐나는 대사는 없었던 것 같네요. 전 차라리 이 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
16/01/21 20:26
애런 소킨의 드라마를 안봐서 솔직히 좀 말하기 애매하긴 합니다만, 영화로만 따지면 애런 소킨의 주인공은 (실화인게 크겠지만) 막 미워하지도, 막 좋아하지도 않는 무언가에 가까운거 같습니다. 말 그대로 속인이라고 해야할까요. 소셜 네트워크의 주커버그도 그랬고, 머니볼의 경우도 분명 고군분투하는 단장이지만 정작 실제 경기는 잘 안챙겨보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딱 현실적 사람을 그려내고 그 사람들이 충돌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잘 그려내는거 같아요.
물론 소셜 네트워크가 가장 좋았다는 것도 동의하지만 머니볼도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크크크 지난 주에 좀 바빠서 영화를 몇편 놓쳤더니 짤평을 못따라가고 있네요. 크크 레버넌트도 봐야하는데ㅠ.ㅠ
16/01/21 20:08
머니볼이 어떻게 보면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연출도 그렇고.(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웨윙이야 예전 작품이지만, 뉴스룸은 시즌 1에서 우우오오호호호호오오오 하던 게 시즌 3에서 보는 거 자체가 고역이 되어버렸죠. 잡스는 아직 안 봤습니다만 보긴 볼 것 같네요. 하지만 소셜네트워크, 머니볼, 뉴스룸 S1E01(...이게 사실 역대급이죠)의 아론 소킨은 죽어버린 듯 합니다. 별개로 늘 감상에 감사드립니다.
16/01/21 20:22
뉴스룸 시즌1 1화는 정말 엄청났죠. 그 장면만 똑 떼어서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죽은 것 같진 않아요. 시나리오만 떼 놓고 보면 <스티브 잡스>는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16/01/21 21:19
스티브 잡스 네이버 평들 보니까 다들 무슨 위인전 보고 나온듯한 평들이 잔뜩이어서,
아.. 그냥 스티브 잡스 빠는영화구나..했는데 정작 충달님 리뷰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네요. 갑자기 혼란이...
16/01/21 22:14
음... <잡스>랑 헷갈리신 것 아닌가요? 이 영화는 최소한 잡스 미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마지막 결말이 훈훈한 척 하고 있긴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포커스 아웃을 이해한다면 정말 뼈저리게 잡스 까는 영화라고 봐야할 거라 생각해요.
16/01/21 22:56
진성 앱등이의 심정으로 찾아갔는데 맞닥뜨린건 잡스의 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프레젠테이션과 같이 겉모습에만 더 관심있는 잡스의 모습을 보고 왜 이 영화는 어두운 부분만 집중하는건가 싶었는데 이 리뷰보고 어느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들었던 물음들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아쉬웠습니다. 소셜네트워크나 머니볼에 비해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만 지리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뜬금없는 타이밍에 아이폰이나 아이팟에 관한 이야기는 왜 하는건지 모르겠고...
16/01/21 23:02
인간관계만 지리하게 이어졌던 건 이 영화가 성공의 이면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일겁니다. 문제는 잡스는 인간관계를 빼면 성공했었거든요.
16/01/22 00:31
감독에 관심을 가지면서 영화를 보는 저에게 이 영화를 볼지 안볼지 고민이네요..;;
데이빗 핀처, 대니 보일 둘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고 데이빗 핀처+애런 소킨의 '소셜 네트워크'는 완전 좋아하는데 대니 보일+애런 소킨의 조합은 흠흠-_-)a
16/01/22 01:38
아론소킨이 각본을 쓴 <머니볼>, <소셜 네트워크>가 각각 4.5점, 5점을 준 영화라 기대했는데 아쉽더군요.
런칭쇼 공연장 곳곳의 소품들이 색감도 그렇고 대칭적인게 큐브릭스러운 느낌을 주는게 흥미로웠고 (시작에 2001스페이스오디세이 얘기도 나오죠...)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했지만 잡스 이면의 얘기들을 보여주는 것 이상로 나아가질 못한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가 부족한 이기적인 CEO? 너무 진부한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16/01/22 01:48
그 이야기를 어떻게 연출하는 가가 감독의 역할이고 그 역량에 따라서 영화의 퀄리티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부분에 그쳤다는 건 감독의 책임이 컸다고 생각해요. <스티브 잡스>에서 대니 보일은 전혀 보이지 안핬거든요.
16/01/22 10:27
마이클 패스벤더 연기가 거의 메소드 수준이라 레오가 또 오스카에서 물먹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크크크
그리고 개인적으로 믿고보는 여배우 케이트 윈슬렛 연기력 또한 말씀해주신 바대로 좋았습니다. 배우들 연기력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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