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의 뒤를 한 소년이 열심히 쫓습니다. 나무까지 타며 겅중겅중 뛰어보지만 사람이 늑대의 발을 따라잡을 순 없죠. 아직 어린 그는 사냥을 하는 것도, 몰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늑대 가족의 자식으로서 더 훌륭한 늑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었죠. 모글리란 이름의 소년은 다른 늑대들에 비해 성장이 더디고 털도 발톱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늑대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에게는 늑대 부모가 있고 스승이자 친구인 흑표 바기라가 곁에 있습니다. 그렇게 정글 속에서 늑대로 살아가던 모글리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정글의 무법자 쉬어칸이 인간은 정글에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쉬어칸은 흉폭한 호랑이이고 모글리를 지키려면 일가족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모글리는 정글을 떠나기로 하고 쉬어칸은 모글리를 노립니다.
원작에 대한 제 기억은 좀 가물가물합니다. 정글 속 생존의 법칙과 사회적 규칙을 꽤 엄격하게 가르쳤다는 인상이 짙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원작만큼 훈육에 가까운 태도를 디즈니가 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 남는 것은 동물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모험일 겁니다. 존 파브로우의 <정글북>은 이걸 정확히 잡아내고 있습니다. <정글북>에서 모글리는 정말 바쁘게 뛰어다니고 여러번 위기를 맞습니다. 작은 퀘스트부터 생존에 직결된 문제까지 치열하게 부딪히고 이겨냅니다. 아기자기한 퍼즐부터 구르고 깨지는 서바이벌까지 영화는 여러가지 정글짐을 설치해놓았습니다.
꼬맹이가 주인공이니 그렇게까지 스릴이 있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글북>은 어린 아이를 해치기에 최상의 조건을 이미 갖추어 놓았습니다. 그 곳은 야생의 정글이고 어린 인간이 맨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호랑이라는 맹수가 아예 먹잇감으로 표적을 삼아놓았죠. 쉬어칸이 대놓고 모글리를 쫓는 순간부터 영화는 무시무시해집니다. 짐승들이 달라드는 장면에서부터는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180도 바꿔서 야수성을 드러냅니다. 마음것 흉폭해지고 위협을 가하죠. 화면을 향해 돌진하며 놀래키는 캐릭터들의 변신은 반칙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피와 살점만 생략했을 뿐 영화 속 동물들의 싸움은 웃고 볼 수 있는 수준이 절대로 아닙니다. 세상 편하게 놀던 발루마저도 원숭이들을 치워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친근하게 보이지 않아요. 특히나 제일 큰 적인 쉬어칸은 나올 때마다 보는 사람을 엄청나게 긴장시킵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동물들은 귀엽습니다. 털 달린 포유류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그래픽 구현이 잘 된 편입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동물들의 묘사에는 성인취향이 더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바기라나 카아, 쉬어칸 같은 경우 이들의 근육과 날렵함이 강조되어있습니다. 막 다른 곳에서 터져나오는 야성은 사람이 표현하기 힘든 원초적 폭력을 보여주지요. 캐릭터들은 말하고 생각하면서 인간성을 보입니다. 동시에 야수로서의 본능도 발휘합니다. 배우들의 목소리까지 합쳐지면 이들은 굉장히 섹시한 존재가 됩니다. 이드리스 엘바의 목소리는<주토피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박력과 위엄을 보이지요. <정글북>의 동물들은 쓰다듬고, 안기고 싶지만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존재들입니다. 기껏 스칼렛 요한슨을 섭외해놓고 카아의 분량을 그 정도로밖에 못 맞춘 건 결정적인 실수 같지만요.
영화의 주된 갈등은 모글리의 정체성입니다. 모글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늑대로 길러진 존재입니다. 야생의 환경에서 다른 이들의 인정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 지를 점차 배워나가죠. 영화는 불에 대한 공포와 도구의 사용법을 두고 이를 풀어갑니다. 정글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을 마침내 해내면서 모글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정글북>은 배타적 사회에서 이질적인 자신을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있어서 모글리와 쉬어칸의 대결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된 감은 있습니다. 쉬어칸이 아무리 정글의 무법자라 해도 결국 생태계의 순환논리를 따르는 자연의 존재죠. 그렇다고 영화 속에서 쉬어칸의 악행이나 퇴치되어야 할 이유를 명확히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모글리가 맞서는 결정적 이유는 자기보호의 본능이죠. 그런데 이를 위해 모글리는 불을 가지고 와서 정글에 큰 화재를 일으킵니다. 쉬어칸이 일으키는 악행보다도 훨씬 더 크고 넓은 파괴행위를 저지른 셈이죠. 정글의 일원으로서 이런 행위가 용서될 수 있는지에 대해 영화는 정확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쉬어칸은 누군가가 죽였어야 했다" 라고 이익의 득실을 따져볼 수 있게끔 장치가 있었다면 모글리가 용서받는 이유도 더 정확해질 수 있었을 텐데도요. 문명 대 자연, 인간 대 짐승, 파괴와 정치 사이의 갈등에서 영화는 좀 둘러대는 인상을 줍니다. 어쩌면 이 부분도 제작이 확정된 속편에서 더 속시원하게 풀릴지도 모르겠군요.
<정글북>은 탈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성장담으로 압축된 이야기입니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모험담으로서 재미가 산재해있는 영화죠. 이 영화의 가장 큰 본질은 맹수액션이 아닌가 싶지만 액션으로서의 미덕만 따져봐도 살 떨리고 스릴이 넘칩니다. 공룡들이 말 할 수 있는 <쥬라기 공원>이라고 보면 되려나요.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제 실사 그래픽에서도 자신들의 브랜드 철학을 이토록 영리하게 섞어내는 디즈니에게 또 한번 놀랄 뿐입니다.
@ 포식자와 피식자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꽤 당황스럽지 않나요.
@ 눈싸움 설정이 빠져서 좀 아쉽네요. 1994년작에서는 이 부분이 핵심으로 나와서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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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보고싶다. 여친도 워크래프트보다 이걸 더 선호하던데...
여친이 이러더군요. 워크래프트는 재미보다 의리로 봐야한다고 그렇게 하스스톤 하더니...
전 하스스톤 안해서 크크크.. 보기야 하겠지만 세계관을 모르니..안그래도 정글북을 보기에 워크래프트보다 무리가 없는 걸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