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있는 글은 어떤가 입 안에서 퍼석거리는 감촉만으로 즐기는 문장은 어떤가 솜사탕마냥 맛보고 나면 허무해지는 글쓰기는 어떨까 이야기가 없어 아무 교훈도 감동도 없기에 읽고나면 허무해지지만 어쩐지 읽게되는 그런 낱말의 배열은 어떠한가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신화에 기반한 신화적 글쓰기는 어떻겠는가,
라고 그가 얘기했고 나는 그걸로는 별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고,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따지고 들었지만, 내가 말해봤자 그의 글쓰기는 병적인 것이라 이미 멈출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조만간 그가 빌어먹게 되리란 예상을 어렴풋이 할 뿐이었다. 난 그게 새삼스래 안타까워
이야기는 먼 옛날 말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을 것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사람들이 찾는 인간 본성의 공통의 취향일 것이라고, 또 이미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서 이야기가 아닌 것을 쓰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까지 말했을 때 그는 반박했는데,
그냥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직 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한 인간이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은 이미 많으며,
허구는 정교해질대로 정교해져서 빽빽한 그 허구에 숨이 맥히는걸 나는 참을 수 없어 기승전결에 맥이 빠지고 반전엔 숨이 가빠 몸에 좋은 재미와 감동은 이제 피곤하고 차라리 콜라 혹은 담배같은 입에 당기는 걸 원하는걸 한숨쉬듯 나오는 혹은 마려웠던 소변을 보는 쓰기를 하고싶은걸
제정신을 놔버리고 싶은걸
이미 내 머릿속에선 애완견과 냉장고 세번째칸 서랍이 사랑에 빠졌는데 냉장고 서랍안에 썩어버린 음식이 그들의 사랑에 방해가 되는데 슬픈 개의 척추는 틀어지고 흩어져서 소나무로 돋아나는 가운데 감가상각비의 적용으로 주인은 냉장고를 처분하기 곤란해하는데
내 글쓰기는 미쳐 아니 미처 마치질 아니 원하는 바에 미치질, 미쳐서 마치질 혹은 망치질 못해 구부러진 못으론 도무지 글을 망치질로 박다가 망치는 일을 아니 글을 어떻게든 마치는걸 ,
여기까지 이야기하더니 그도 사람이라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마시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런건 독자에게 실례아닙니까 했더니
그는 아 그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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