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생활한 나는, 이별을 접하는 빈도가 남들보다 많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과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나의 소박한 희망사항 이였지만, 아쉽게도 그 소원은 현실을 직시한다면 결코 소박한 것이 아니였다. 이민사회의 특성상, 오는 사람도 많지만 떠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어느정도 마음을 맞대고 친해질만 하면 이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거 참 이별없이 지낼수는 없을까...']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였다.
어린 나이에 뭘 알았겠냐만, 어른들의 사정으로 벌어지는 이별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난 모든 만남에 이별을 전제로 깔아두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에, 좀처럼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힘들었다. 친해진 만큼 이별의 아픔은 확대되고, 내가 무심할수록 그 무게는 덜하다는 사실이 늘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방식은 나에게 근본적인 해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다행히도 마음속의 허전함은 조금 덜해졌고, 생각해보면 애초에 무언가가 차지한 적도 없었으니 허전함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별이 싫어서 만남을 기피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모순적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렇게 멋대로 정해버린 삶의 방식은, 커서도 나의 인간관계 방식에서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든, 친해지는 것 이상이 되고 싶은 사람이든, 단 시간내에 이별의 기미가 보인다면 가차없이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공항을 싫어한다. 공항은 이별의 장소이고, 많은 이들의 가는 길을 바라보기만 하고 따라갈 수는 없는 쓸쓸한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유의미하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위해, 난 아무리 바쁘더라도 떠날때 만큼은 공항에 마중 나가려고 노력했다. 비록 내가 평소에 많이 표현하지는 못했어도, 내 마음속에서 만큼은 중요한 사람이였노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네가 공항에 나오는 것도 의외였는데, 너만 나올줄은 더욱 몰랐네? 허허"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는 분을 배웅하러 공항에 나갔는데, 의외로 지인들중 와준 사람이 없었다. 그분은 내 다른 지인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날이 삶을 즐기기 바쁜 금요일이라 그랬을까? 그분의 예상과는 달리, 지인들 중에 그날 나타난 사람은 내가 전부였다. 뒷북 같지만 사실 난 알고 있었다. 오지 않은 분들 이상으로 난 그간 그분과 함께한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다만 그 감정이 이별의 아픔을 확대시킬까 두려워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것도, 그리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왜 가까워 지지도 않았는데 이별부터 생각해?"]
수도 없이 내 자신에게 해줬던 이 말이, 내가 극복해야할 가장 큰 산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발견한 사실은, 난 이별을 위해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마음은 내가 보여준 행동 이상으로 그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심한 척, 관심없는 척 일관했지만, 사실 나는 내심 기적을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진짜" 인연이 나타나서, 나를 이런 이별의 강박으로부터 구해주기를 바랬던 것이였다. 잠시 이별해도 괜찮다고, 조금만 참으면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인연을.
새 곳에서 터를 잡은지도 수년이 지났다. 절대로 또 옮기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내 의지와는 달리 몇년이나마 또 터를 옮겨야만 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점점 심하게 기울고 있다. 그걸 느낀 순간 매사에 너무 지지부진하게 변해버린 내 자신을 보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만남에 더욱 소극적이게 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대충으로 일관하던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줬다.
["만약 떠나도, 꼭 돌아와야 된다?"]
순간 울컥하는 눈물을 참으며 내가 그동안 애써 부정하던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난 이별이 싫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난 늘 후자를 부정해왔다. 어짜피 사람들은 다 떠나는데, 나 혼자서 사는 법을 배우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해지고 싶어도, 곧 떠날 사람이라면 거리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거리와는 달리, 내 마음의 거리는 제 멋대로 가까워져만 갔다. 애초에 나에게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였고, 내가 할수 있는 방식도 아니였다. 그렇게 십수년간 내가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던 이별들은, 전혀 괜찮지 않았고, 괜찮지 않아도 되는 것이였다. 이별하면 슬픈건 당연한 것이고, 거리를 둔다고 내 마음의 거리조차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 말은 어찌보면 사소한 한마디였지만, 그 당시 나에겐 너무나도 필요한 한마디였다. 보다 현재에 충실하고, 잠시 떠날지라도 꼭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로 내가 지금 이곳에 쌓아올린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기적과 감동의 힘을 빌려, 다시 한번 기운을 내고 싶다. 이별 없이 지낼수 있는 인생은 없고, 앞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