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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4 01:45
멀리 볼거 있나요?
박정희 부터 친일파중에도 친일파 엘리트 일본군 육사 장교 출신이잖아요? 차석인가 수석 졸업에 충성혈서까지 쓴걸로 아는데요? 만주군 일본군 복무당시에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상도 받은걸로 아는데요? 당시 만주군이 독립군과 전투가 많았는데 박정희가 적극적으로 독립군과 싸웠다는 증거 아닐가요?
18/02/14 01:58
해방후에는 남로당 간부로 활동하다가 걸려서 사형당할뻔했지만 포섭장교들 명단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았죠 무슨 배트맨 박쥐도 아니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알면 알수록 진짜 이상한 인물이죠
18/02/14 02:29
박정희가 본문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박정희가 적극적이건 수동적이건 독립군과 싸웠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럴 기회가 있으면 충분히 그랬을만한 인물이기야 합니다만.
18/02/14 10:39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절름발이이리님 말씀대로 증거도 없거니와 정황상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아요. 박정희는 1917년생이죠. 나이제한(20세)을 말씀하신 혈서로 뚫고 1939년에 입학허가를 받고, 1940년에 입학해서 1944년에 육사를 졸업합니다. 즉 일제패망 1년 전에 비로소 일선에 배치가 된거죠. 그런데 독립군 세력은 박정희가 꼬꼬마일 1921년에 자유시 참변으로 사실상 궤멸되었고, 1932년 만주국 수립을 거쳐 1930년대 말에 관동군이 집요하게 추적을 하면서 1940년대에는 만주에서의 군사적 활동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김일성도 이때 포기하고 소련으로 튀었다고 하지요. 결국 절름발이이리님 말씀대로 기회가 있었다면 마다하지 않을 인물이었기는 했겠지만, 그럴 기회 자체가 생기지 않았죠.
18/02/14 11:02
그렇기는 하지만요
김좌진 장군같은분은 독립군으로 목숨을 바치고 박정희는 친일파 장교하다가 해방후에 쿠데타 독재자가 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18/02/14 05:52
6.25에 참여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 인사들과 함께 한국현대사의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죠.
그 시대상에서 저 정도로 살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개인적으로는 선량한 개인의 전형 정도로 평가하는 인물이라 심정적으로는 동감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훈장을 받을만한 정도는 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8/02/14 08:12
[光復 48주년 金大中씨 특별기고
1993년 08월 15일 동아일보 "歷史를 바로 조명해야 한다" ] .....(전략) 한편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이러한 국내외의 독립지사들과 같이 감옥가면서 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 못지 않게 민족을 지키기위해서 온같 심혈을 기울인 분들의 공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교육사업, 문화사업, 종교사업 혹은 사회사업 등을 통해서 우리국민을 교육하고 계몽하여 그들에게 힘을 주고 내일을 기약하게 깨우치고 실력을 양성하게 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분이 김성수 선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성수 선생은 참으로 특이한 존재였다. 그분은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협력을 일제에 했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강요된 것이고 혹은 조작된 것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촌은 비록 감옥가고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독립투쟁가 못지 않게 우리 민족에 공헌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인촌은 동아일보를 창설해서 조선일보와 더불어 3.1운동 이후의 거의 전 시기에 있어서 우리 민족을 계몽하여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그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 공로는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하 이 나라를 이끌 고급인력을 사회에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 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능력을 과시했다. 이것은 그 당시 그 당시 일제가 우리에게 "조선인은 근대적 산업을 할 능력이 없다"는 열등감 부식 정책에 광분데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반격이었던 것이다. 경성방직은 그 당시 우리 조선 사람에게 준 긍지와 위로는 참으로 큰 것이었다. 인촌은 탁월한 덕성으로 해서 주변에 인재를 모아가지고 우리 민족의 보호와 발전에 노력을 했다. 이러한 분들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그 사소한 행적을 들어 친일 운운하고 있는 것을 본다. 최근에도 그런 문제가 정부기관에서 조차 논의되었던 것을 본 일이 있다. 나는 이런 자세는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대중 대통령의 인촌 김성수에 대한 평가입니다. 인촌 김성수는 흠이 많지만, 흠보다도 일제시기에 국내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갖추게 한 인물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족자본으로 세워졌던 보성전문이 뿌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재정적으로 휘청거리며 주인이 바뀌어 갈 때, 과감히 인수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높은 수준의 사립대학으로 키워낸 교육자의 공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건국서훈이 취소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18/02/14 20:07
"국내에 있던 사람은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 친일파" 아닙니까? 민족정기를 세우는 데 당연한 순리지요. 친일파 자손일게 뻔한 저야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지만.
18/02/14 08:38
몇 년전에, 80대 노교수 강의를 들을기회 있어서 들었는데 30년대생이고 10대,20대때 인촌 김성수를 직접 봤던 분입니다. 이름만 말하면 아는분까지는 아니지만, 해당영역 석학대우 받는분입니다. 정치성향도 치우친분 아니고 좀 다른관점에서 정치나 사회를 보는분이라 강의는 재미없었지만 주제나 내용들이 좋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조차, 친일인사 결정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시로 몇분 들었는데 인촌 김성수도 친일인사라고 단순히 말하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직접 그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무자르듯 구분짓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우리가 말하는 독립운동가분들조차 김성수 도움받고 교류도 많았다고.. 저는 그래서 친일파의 기준에 혼동이 왔습니다. 친일을 어느정도 하면 친일파로 말해야 하는건가.. 공으로 과를 지울수 없는데 그러면 선후는 어찌 봐야 하는가 과가 일단 들어가면 땡인가..
18/02/14 11:36
국채보상운동 주도했다고 알려지고 건국훈장 받은 서상돈의 경우도
자기 이권을 위해서 일본인과 협력한 사실이 있고 그래서 최근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18/02/14 09:00
공과에 대해서 논의할 수는 있겠으나 건국훈장을 받을 수준은 아니다. 이번 결정이 가지는 의의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별개로 과연 동아일보는 피를 토하는 눈물의 김성수 일대기를 칼럼으로 다룰 것인가?? 이게 궁금할 뿐이죠.
18/02/14 09:15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친일 행각이 없었다면야 건국훈장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해방 직전에 노골적으로 친일 행각 벌인 이상에야...
18/02/14 09:42
공은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황국신민 운운한 자에게 건국훈장은 말도 안된다고 봐요. 공만 놓고보면 김활란도 훌륭한 건국훈장감이니.
18/02/14 09:49
친일한 배신자를 평가 운운하니 NBC방송국에 유명한 앵커가 그런 막말을 할수 있는거죠.
어떠한 공이 있어도 살인자가 면죄받을수 없는것 처럼 어떠한 공이 있어도 친일파는 척결해야 됩니다. 너무 당연한거죠.
18/02/14 10:01
모교 그 김성수맞나 당연한 조치지만 격하만 하는건 다소 아쉽네요 성북구 일대 전후 유랑민들에게 사실상 땅을 다 내어준 인물이고 나라에 공헌이야 웹에서만 봐도 찾기 쉽게 했다고 보는데
18/02/14 10:15
어렸을때야 친일파 하면 때려죽일 놈들 했지만, 머리 커지고, 책도 좀 보고 하니까 참 그 시대가 슬프더래요, 친일하는사람들이 다 자기 이익만 보는 이기주의자들만 있었겠습니까. 1900년대는 나라에 대한 무력감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대국으로 모시던 중국이 서방에 무너지고 옆나라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더니 러시아랑 전쟁해서 이기고.. 백성들은 무지하고 나라의 실력은 미미하고.. 결국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방법은 근대화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고, 한일합방 전에도 근대화에 목을 매던 한국 지식인들이 20세기초 전성기 시절의 일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물론 친일은 용서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주홍글씨지만 윤치호도 그렇고 이광수도 그렇고 참 슬픈 사람들입니다.
18/02/14 10:29
어느 시대든 안그렇겠습니까.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도 인권,노동운동하다 그런 좌절감에 '변절'하여 현재진형형인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무력감과 시대의 슬픔을 이겨내고 굴하지 않고 끝까지 처음의 뜻을 목숨걸고 지켜나간 사람들이 있어요. 건국훈장은 그런 분들에게 주어져야한다고 봅니다.
18/02/14 15:09
저는 박정희와 이승만, 전두환 같은 자들이 가장 높은 품계의 훈장을 받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나라의 훈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싶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도 유대인을 구하기 전에는 그저 나치 부역자에 불과했습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사람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많은 것을 (자신의 목숨과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탄압을 포함한) 바치는 것과 열강인 일본의 일부가 되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을 겁니다.
약간의 비유를 하자면 통일에 대해서도, 먼 훗날 통일이 된 후의 평양에서는 1945년부터 시작된 김씨왕조의 집권기를 일종의 암흑기로 규정할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양국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때, 통일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운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 젊은 층의 여론이 그런 것과 같이 통일을 포기하고 자강책을 강구하더라도, 그것이 악독한 범죄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18/02/14 21:09
뭐 말씀대로 훈장이란게 결국 결과론 혹은 주는 놈 마음이란 건 동의합니다. 선악을 무자르듯 나눌 수 없는게 역사와 사람이고.. 선의와 별개로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가 중요하다고 봐요. 일제가 어떻게하면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나라와 국민을 잘살게할까 하려는 고민 끝에 나온 행동이 한일합방이었죠. 황국신민이 되는 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고 사람을 잘살게 하는거라고 김성수가 믿었을지 모르나 그 결과 우릴 지배하는 자를 위한 전쟁에 나가는 걸 선동하고 찬양했던 행동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받기엔 부적절하다고 봐요. 통일을 포기하고 자강책을 강구하는게 당연히 범죄도 아니고 명백히 억압의 시기였던 일제시대와는 상황이 다르니 그를 위해 하는 일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통일에는 도움이 안될 것이므로 통일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받을 순 없을겁니다.
18/02/14 11:50
인촌 같은 친일 행위자의 건국훈장 취소도 중요하지만 전에 글도 적었었던 김립 같은 좌익계열 독립운동가의 서훈도 추진 했으면 좋겠습니다.
18/02/14 12:14
내선일체와 일본군 입대와 징병 독려했으면 그게 친일파고 건국훈장 취소는 당연한 것이죠
영화 암살의 염석진이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조국이 해방될지는 몰랐으니까”
18/02/15 02:09
혹여라도 인촌이 친일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신 분은 인촌기념회에 본인들이 직접 올린 해명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inchonmemorial.co.kr/story/story2.html (글 아래 PDF 파일을 자신들이 스스로 요약한 것) 정리해보면 1. 인촌의 친일 글이나 인터뷰가 게재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는 총독부의 기관지임으로 신뢰성이 없다 2. 여러 인사들은 김성수의 글과 연설 등은 조작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3.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에 의하면 인촌의 친일글은 대필이다 등등입니다. 그 외에도 PDF 파일을 보시면 인촌 선생은 직접 글을 남기거나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식의 증언도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인촌 스스로 자신이 친일행위를 한 적이 없는데 조작됐다라거나 한 자료는 현재까지는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실제 인촌이 친일 지식인이었는지 일제의 조작으로 인해 누명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팩트는 [인촌의 명의로 되어 있는 친일 글과 인터뷰, 연설 등등이 활자화되어 남은 것은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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